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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분류 : 도시의 이념과 모델
  영어 : Cultural City
  한자 : 文化都市


문화도시란 문화를 중요한 도시발전의 원리, 원칙, 축으로 하는 도시를 말한다. 본디 이 말은, 알려진 바와 같이, 1985년 「유럽각료회의」에서 그리스 문화부 장관이자 영화배우였던 멜리나 메리쿠리(Melina Mericuri)가 '문화도시 선정'이란 프로젝트로 제기한 개념이다. 이 주창에 의해 그리스 아테네가 1호 도시로 문화도시로 선정되었고, 그 과정을 통해 문화도시는 정책적인 개념을 넘어 정치적으로 등장한다. 오늘날에도 EU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러나 여러 차례 변질과정을 거쳐 현재는 정치적 이벤트가 되었다. 지정도시도 여러 개이고, '문화'에 대한 존중 같은 특별한 원리 또한 사라진 지 오래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왜 이 도시가 문화도시로 선정되었지'라고 갸우뚱거릴 만한 도시가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에 영향을 받아 여러 대륙에서 '문화도시 선정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문화도시가 정치적 용어가 되고, 선정프로젝트로 이벤트가 된 데에는 도시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도시의 내부문제와 도시 간 경쟁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존재한다. 도시의 발전 과정에서 많은 도시들은 환경문제와 산업의 한계-제조업 위기-를 맞아 성장전략을 전환하게 되었고, 그 매력적인 탈출구로서 '문화'(산업)를 주목하며, 문화를 매개로 한 새로운 도시성장을 추구하게 된다. 여기에 199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화 된 신자유주의 열풍은 더욱 냉혹한 경쟁의 한복판으로 도시를 내몰았고, 허허 벌판에 놓인 도시들은 새로운 성장 아이템으로 '문화산업과 도시재생, 관광활성화'라는 새로운 테마를 찾게 되며, 마침내 제기된 창조도시론의 아이템을 따라 문화도시에 집중하게 된다. 바야흐로, 문화가 도시발전의 중심이 된, 문화중심시대, 문화 기반 도시발전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어떤 도시도 정작 '문화'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화는 단지 차용될 뿐, 문화가 갖고 있는 함축적 의미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과 같다.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문화의 산업화 현상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문화산업이란 용어를 사용했건만, 오늘날 문화산업은 문화의 산업화를 추앙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마찬가지로 문화도시 또한 문화주의로의 전환이라는 문제 틀에는 관심이 없고, 문화가 갖는 효과성과 정책적 아이템에만 관심이 많다. 그것도 도시 간 경쟁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때문에 중요한 것은 문화에 대한 관점이다. 과연 문화란 무엇이고, 문화는 도시 발전 전략 상 어떤 함축적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문화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해야만, 도시 발전 궤도로서 문화도시가 추구해야 할 방향과 목표, 그리고 현재 발전전략 상 추구되는 현실에 대한 냉혹한 교정과 수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문화도시를 추구하면서도 다른 현상을 접한다. 혹자는 문화산업적인 전략으로 간주하고, 다른 사람은 도시의 인문학적 환경, 혹은 예술적인 조건 등으로 얘기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 도시가 내포하고 있는 삶의 조건과 행동의 양태를 얘기하고, 어떤 사람은 미학적인 담론과 도시경관의 문제를 얘기한다. 모두가 문화와 관계된 것이지만, 그 또한 한 측면에 대한 얘기다. 때문에 우리가 문화도시를 말하기에 앞서 정리해야 할 것은, 이 맥락적 모호성으로부터 관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즉, 문화에 대한 관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문화도시를 명료화 하고, 그럼으로써 문화도시가 나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하는 게 정책적인 옳은 판단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얘기겠지만, 그래도 문화에 대한 것을 말한다면, 그것은 '어떤 행위(태)를 낳게 하는 무의식의 지반'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정체화 된 어떤 것이다. 그 자체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것은 어떤 행동과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즉, 행위와 행동의 양태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문화를 알 수 있는 것은 행위와 행동의 양태 속에서다. 그 행동과 행위의 양태 속에서 그 사회의 무의식-정체화 된 것-을 보게 되고, 그로부터 그 사회의 욕망을 바라보는 것이 문화(학)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올바른 문화정책이라 함은, 위에 드러난 예술이나 문화산업, 사람들의 행동이나 행위의 양태 등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잠재된, 수면 아래의 거대한 욕망과 정체를 보는 것이어야 한다. 그 사회가 과연 어떤 문제-욕망-를 함축하고 있느냐 하는 것!

이 문화는 크게 보아 세 가지 요소 속에 구체화 된다. 그 첫째는 일상의 관계성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제도와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 경제적 행태 등 모든 관계 속에 표현된다. 그것이 한 사람의 태도나 행동이 아닌 한,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공통된 행동과 행위의 패턴을 보여야 문화가 되는 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사회가 어떤 관계성을 갖고 있는가?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사람과 제도, 물질, 경제, 예술 등 그것이 어떤 관계(성)에 있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 결과로부터 우리는 문화성을 보고, 그 사회가 갖고 있는 관계성을 묵도하게 된다.

둘째, 다른 하나는 시간 속에 축적되어 온 것들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통해 반복되고 습관화 되어 우리 속에 패턴이 되고, 스타일이 되어 남아 있는 정체(停滯)된 어떤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는 우리를 정체(正體)하게 되고, 그로부터 우리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 시간이 과연 우리의 모습을 정체(正體)하는 것인가? 일반적인 경우, 그것은 일치할 수 있지만, 우리처럼 여러 가지 단절을 경험한 경우, 그것은 불일치하는 측면이 강하다. 역사는 단절되고, 전통은 박제화 된다. 현실의 정체는 시간 속에 축적된 그 어떤 것이 아니며, 늘 모호성으로 남는다. '이게 뭐지' 하는 그런 시각!

세 번째 요소는 미학이다. 예술 등 우리의 정체를 표현하는 영역에 대한 것으로, 이 요소는 다니엘 벨(D. Bell)에 따르면, 혼합의 방식을 통해 구성될 수 있다. 그것은 여러 나라, 문명의 요소와 혼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어떤 문명, 어떤 요소와 융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미학의 영역에 있어 중요한 것은 '스타일'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우리 속에 일상 속에 스타일화 되었을 때 그것은 우리의 문화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 잡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화가 아니다. 우리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해도 그것이 우리의 문화로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오래된 판소리가 우리의 정체이지만 또 현실의 문화로 그대로 대응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문화의 요소에서 매우 함축적인 것을 정의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문화는 오랜 정체된 행위와 행동이라는 것, 그것이 발현되는 무의식의 구조가 문화고, 그 문화는 시간과 그 사회가 갖는 미학, 관계의 조건들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일상화, 즉 무의식 구조화이다. 그것이 시간이든, 미학이든, 관계의 영역이든, 일상화, 즉 무의식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문화가 아니다. 문화란 그런 요소들이 중첩화 되어 우리의 행위와 행동들의 양태를 지배하는 것이며, 정체화한 어떤 것이다.

문화가 이런 것이라 할 때, 문화도시라 함은 바로 이러한 요소들을 재정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의식 속에 등장하는 행위와 행동의 양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것, 그 속에 잠재되어 있는 관계와 미학, 시간적인 것을 어떻게 통제하고 조절할 것인가 하는 것, 바로 그와 같은 것을 혁신하는 것이 문화도시다. 때문에 문화도시란 단지 예술의 발전이나 문화의 산업화, 시민문화의 육성 등과는 다른 작업이다. 그것은 단지 문화도시를 위한 전략일 뿐, 목적은 아니다. 문화도시란 우리의 행위와 행동의 양태가 좀 더 미학적이고, 전통적이며, 민주적인 관계의 형태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것은 공간의 문제와 도시의 환경이 갖는 문제, 제도의 조건, 민주주의의 문제, 산업, 시민의 일상성 등에 관심을 갖는다. 바로 시민의 생활성 자체를 바꾸려는 게 문화도시의 방향이자 목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문화도시의 개념과 관점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미주
1) 아마도 가장 크게 변질된 시점은 1990년이다. 이때부터 유럽의 공업도시들이 문화적 리모델링이란 관점 하에 문화도시에 선정되기 시작했고, 1999년 국가 간 과열을 방지한다는 명제 하에 2005년부터 순환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 문화도시는 그야말로 정치적 이벤트가 되었다.(라도삼•조아라, 서울 도 시경쟁력 제고를 위한 컬쳐노믹스 전략 연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2007, p. 178)

2) 1997년 American Capital of Culture Organization(ACC)은 아메리카 대륙 35개국의 도시들을 대 상으로 매년 아메리카 문화수도(American Capital of Culture)를 선정하고 있다. 아랍지역 또한 유 네스코의 Capital Programmes에 의해 2000년부터 아랍 문화수도(Arab Cultural Capital) 선정하 고 있다.

3) 다니엘 벨은 사회구조의 영역을 정체와 경제, 문화의 영역으로 나눈다. 맑시즘에서 말하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에 대응하는, 사회구성체와 대별된 개념으로 그는, 정체의 영역은 '양자택일'을, 경제의 영역 은 '단선적 발전구조'를, 문화의 영역은 '혼합과 융합'을 발전의 원리로 내세운다. 그 사회의 문화가 발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 문화가 융합, 혼합됨으로써 발전될 수 있다는 얘기다.(D. Bell, The Winding Passage ; Essays and Sociological Journeys, Massachusetts, 1980, 서규환 옮김, <정보화 사회와 문화의 미래>, 디자인하우스, 1992)


<참고문헌>
A.L.Kroëber & C.Kluckhohn(1952), Culture ; A Critical Review of Concepts and Definitions, Greenwood Press, 2001.
D. Bell, The Winding Passage ; Essays and Sociological Journeys , Massachusetts, 1980, 서규환 옮김, <정보화 사회와 문화의 미래>, 디자인하우스, 1992).
F.Bianchini & R.Swaim, Cultural Policy and Urban Regeneration, Manchester Univ., 1993.
라도삼‧조아라, 서울 도시경쟁력 제고를 위한 컬쳐노믹스 전략 연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2007.
라도삼, 문화도시의 개념과 문화도시화를 위한 서울시 전략의 반성적 고찰, 문화더하기 콘텐츠, 글로컬창의산업연구센터, 2013.

작성자: 라도삼(서울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