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스바움은 동물을 위한 정의를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정의를 동물에게도 확대한다. 그는 동물을 “사람과 마찬가지로 각자가 추구하는 일련의 중요한 목적이 있는 삶의 형태”(너스바움, 2023: 162)를 갖는 존재로 간주한다. “각 동물은 생존, 생식,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선한 목적을 지향하는 목적론적 시스템”(너스바움, 2023: 163)이다. 정의는 각 종의 전형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 부정의는 “피해뿐만 아니라 고의든 과실이든 부당한 방해에 의해 중요한 삶의 노력이 차단되는 것”(너스바움, 2023: 44)이다.
여기에서 동물 정의의 바탕이 되는 것은 역량접근법이다. 역량(capability)이란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자유,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서 행동을 선택할 기회를 의미한다.”(너스바움, 2023: 149) 이는 원래 인간 역량을 의미하지만, 너스바움은 그것을 동물에게로 확장한다. 생명, 건강, 신체적 완전성, 감각, 상상력, 사고, 감정, 실천이성, 소속, 다른 종과의 교류, 놀이와 재미, 자기 환경에 대한 조절이 그것이다(너스바움, 2023: 170). 너스바움은 인간 역량의 항목을 동물에게 확대 적용하는데, 이는 기존의 동물 윤리가 고통의 최소화에 중점을 둔 것과 달리, 고통의 최소화와 더불어 그 반대급부인 번영의 추구 또한 포함한다.
단, 역량접근법은 모든 생물이 아닌 쾌고감수능력(sentience)이 있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다, 쾌고감수능력이란 해로운 것을 파악하는 능력인 통각(nociception),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느끼는 능력인 주관적인 감각 인식(subjective sensory awareness) 그리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파악하는 능력인 현저성(salience)의 감각이 포함된다(너스바움, 2023: 203). 모든 동물이 쾌고감수능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현재 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포유류, 경골어류, 조류, 파충류는 쾌고감수능력의 여러 조건에 부합하고, 연골어류, 자포류, 해면류, 식물은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족류, 갑각류, 곤충은 아직 논쟁 중이다(너스바움, 2023: 220-235).
그러한 쾌고감수능력을 가졌더라도 동물과 인간의 삶의 공간의 거리에 따라 반려동물, 야생동물, 경계동물로 나누고 각각 법의 역할은 달리한다. 인간과 공간을 공유하거나 밀접한 관련성을 맺는 반려동물은 동료 ‘시민’으로 대해야 하고, 반려동물과 반려인 모두 교육과 훈련을 통해 공생 역량(symbiotic capabilities)을 길러야 한다(너스바움, 2023: 311). 한편, 인간과 접촉이 적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그들의 번영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므로, 야생동물이 자신의 역량을 실현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간은 야생동물의 생명, 건강, 신체적 완전성의 침해근절 등을 위해 야생동물 구역의 공무원과 같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너스바움, 2023: 311, 342).
너스바움의 동물 정의론은 인간 도시의 정의는 아니지만,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다종 도시(multispecies)에서 새로운 함축점을 갖는다. 물론 이 도시에서도 인간과 동물 간의 비극적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너스바움이 다룬 문제들을 도시 차원에 적용해 보면, “도시의 어딘가에서는 동물 실험 및 육식을 위한 소비가 이루어지고, 동물에게 해악인 축제가 열리거나 도시민의 공간과 자원을 둘러싼 갈등이 존재한다. 너스바움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역량 접근법에 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현남숙, 2025: 107) 다종 공동체이기도 한 도시에서 동물도 자신의 역량을 펼치며 인간과 공존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마사 너스바움, 『동물을 위한 정의 : 번영하는 동물의 삶을 위한 우리 공동의 책임』, 이영래 옮김, 서울: 알레, 2023.
현남숙, 「다종 간 도시를 위한 정의의 모색과 실천 - 너스바움의 다종 공동체와 해러웨이의 테라폴리스에서의 다종 간 정의를 중심으로」, 서울시립대학교 인문학연구소, 『도시인문학연구』 17(1), 2025.
작성자: 현남숙(전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