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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와 자동차
  분류 :
  영어 : Pedestrian and Automobile
  한자 : 步行者와 自動車


도시와 교외 사이가 ‘경험상(experiential)’ 가장 본질적으로 다른 점을 생각해본다면, 보행자와 자동차 사이의 대조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고밀도 건물들에 둘러싸여 자신도 고밀도 주거용 건물에 사는 것과, 교외의 단독주택에 사는 것 사이의 차이는 도시와 교외 사이의 차이를 전형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교외의 경우에도 건물의 외부는 도시와 다르지만, 내부의 일상 생활은 상당히 유사하다. 건물에 대한 이러한 차이는, 보행 대 자동차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보행자와 운전자, 또 자동차의 탑승자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도시 문화를 경험한다.

저밀도 교외 거주는 자동차 지향적이며 주택에는 자동차를 위한 진입로가 있다. 교외의 거리에서 단독주택을 방문하는 경우 입구로 연결된 길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문은 도로에서도 분명히 보이지만, 거기에 가려면 넓게 펼쳐진 잔디 앞마당 사이에 난 작고 좁은 길을 발견하는 일에 애를 써야 한다. 하지만 그 집을 차로 방문한다면, 길을 찾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그저 집으로 통하는 진입로를 이용하면 된다. 차에서 내리면 대개 그 문으로 직접 연결되는 시멘트나 다른 방식으로 포장된 길이 있다. 교외의 주택에는 도시의 고층 거주지와 달리, 차고가 편한 곳에 위치하거나 주택의 일부로 되어 있다. 교외에 거주한다는 것은 어디로든 자동차로 통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 거주자들 역시 통근한다는 점에서는 당연히 같으며, 교외의 주민들이 승용차로 일하러 갈 때 도시 거주자들도 그 정도의 시간만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유럽에서 미국 문화의 영향력은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더욱 커졌다. 이런 문화적 파동(beat)에는 물질적 변동으로 승용차가 따라왔다. 승용차는 유럽의 도시를 교외화했으며, 더 나아가 대중교통으로부터 벗어나 근대성의 꿈을 실현하는 수단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에 성장기를 보냈던 유럽인들은, 가족이 구입한 첫 번째 냉장고와 첫 번째 자동차는 근대로 가는 제대로 된 도정으로 기억한다. 자동차와 자동차 문화는, 지속가능한 도시라는 최신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고인인 건축 저술가 레이너 밴험의 용어인 ‘2차 기계시대(Second Machine Age)’가 의미하는 것처럼, 영국의 도시계획자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Banham, 1963). 하지만 미국과 유럽 사이의 차이도 분명해서 미국에서는 주택과 일자리 모두 교외로 탈중심화된 데 비해, 유럽에서는 주택만 교외화되어 직장과 집을 오가는 통근시간이 길어졌다(Hall, 1998). 영국의 경우에는 거주지의 위치가 교통비용 대 주택비용의 상쇄라는, 고전적인 알론소 모델에 해당되는 주택 시장의 독특함이 있다(Alonso, 1960). 이 모델에서는 승용차에 대한 접근성이 존재한다면 규모는 크지만 가격이 낮은 교외의 주택에 대한 접근성도 존재한다고 본다.

교외와는 대조적으로, 맨해튼 같은 대도시에 살면 도보로 일을 볼 수 있다. 한 추정에 따르면, 맨해튼 사람들은 일상적인 용무를 해결하는 데에도 하루에 몇 마일1)을 걷는다고 한다. 그곳에는 한 개인이 시간에 쫓겨 빠른 걸음으로 목적지까지 가야 할 때조차도 지켜야 하는 보행자 문화와 사회적 에티켓이 있다. 도시 생활은 낯선 사람들이 아주 근접한 채 생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며, 개인적 공간은 다른 조건에서라면 결코 용납되지 못할 비좁은 장소나 일종의 신체접촉까지 수용하도록 재규정된다. 대중교통수단이 터져 나갈 정도로 붐비지 않다면 사람들은 종종 앉아 갈 수 있으며 다른 종류의 상호작용 전략이 실행된다. 핵심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전략이다. 이럴 때 통상적으로 이용되는 장치인 신문이나 책을 통해 다른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회피할 수 있다. 대도시에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면 무엇인가를 열심히 읽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도시 주민들이 주변에 누가 있는지에 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무관심한 태도는 도시 생활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예리한 관찰자인 윌리엄 화이트(William H. Whyte, 1988)와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1961)는 도시 문화에서는 보행생활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교외 거주자들은 보행자이기를 포기했으며, 그들은 그것을 기꺼이 그렇게 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은 차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단독주택에는 차고가 두 개다. 대규모 개발이 미국 중심 도시 외부에서 이루어진 1950년대에 새로운 교외 거주자들은 가족용 자동차로 스테이션 웨건(station wagon)을 이용했다. 남편들은 자동차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포함한 다양한 수단으로 통근했을지 모르지만, 교외의 엄마(suburban mom)는 자신의 스테이션 웨건을 이용하여 식품점에 쇼핑하러 가거나 아이들을 태우고 다녔다.

미국 생활에서 자동차의 사용은 도시 자체에 영향을 줄 정도로 중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 특히 영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도시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공간이 자동차에게 배당되어 있는지를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고속도로 건설은 도시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거주지구들을 잘라 놓아 각각의 부분을 서로 격리시킴으로써 도시의 사회적 구조를 파괴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영국의 많은 도시에서 정책 차원에서는 자동차와의 밀월관계는 끝났다. 과속방지턱을 만들고, 원래 좁은 도로를 더 좁히고, 신호등을 재조정하는 등의 교통 관리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 2002년 새로 선출된 런던 시장은 런던의 CBD(Central Business District: 중심업무지구)로 들어오는 차량에 대한 요금 부과 제도를 도입했다. 여기서 얻는 수입은 대중교통, 특히 버스의 차량을 확보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었다. 현재까지 그 효과는 약 30%의 교통량 감소로 나타났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예방효과가 너무 커서 대중교통 수단을 늘리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수입이 부족하게 되었고, 런던 대도시권의 자동차 보유 수준에 미친 전체적인 영향도 미미했다. 미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교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중교통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통근과 쇼핑 등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자동차 사용 이외의 대안이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교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보행 경험이 실제로 얼마나 특별한가라는 측면도 중요하다. 보행 군중의 일부가 되는 것, 그리고 유사한 목표를 지니고 즐겁게 그런 목적을 공유하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보행을 해본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사람들은 입구에서 차를 주차하고 들어가야 하는 디즈니월드(Disneyworld)와 같은 놀이 공원에서 보행 대중으로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걷는 즐거움과 자동차로부터 해방된다는 즐거움은 미처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그곳에서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한 전환의 느낌은 아주 즐겁기 때문에 쇼핑몰이나 심지어 라스베가스 카지노도 내부 공간을 꾸밀 때는 도시경관을 재현하려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도시는 항상 문화적으로 중요하기 마련이고, 이러한 사실은, 교외화된 미국의 경관을 더욱 인간적인 방식과 보행자 중심의 원칙으로 다시 그리기를 희망하는 ‘뉴 어버니스트들(New Urbanists)’의 철학에서 가장 강력하게 표현된다.


1) 1마일은 약 1.6킬로미터


<참고문헌>
Alonso, W. 1960. ‘A theory of urban rent’ Papers and Proceedings of the Regional Science Association, 6: 154-9.
Banham, R. 1963. Theory and Design in the First Machine Age. London: Architectural Press.
Berman, Marshall, 1988. 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 NY: Penguin Books.
Jacobs, Jane, 1961.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NY: Random House.
Whyte, W. H. 1988. City: Rediscovering the Center. NY: Anchor Books.
M. 고트디너와 레슬리 버드 저, 남영호, 채윤하 역, 도시인문학총서 16, <도시연구의 주요개념>(라움, 2013), pp.177-186

작성자: 김진곤(서울시립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