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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 도시 영화(변두리 도시영화)
  분류 : 한국의 도시영화
  영어 : Surroundings City Movie (Suburb City Movie)
  한자 : 周邊 都市 映畫


변두리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지역의 가장자리가 되는 곳’, ‘어떤 물건의 가장자리’를 뜻한다. 문자적으로는 ‘끝’, ‘경계’, ‘사방’을 뜻하는 말로서, 국경선이나 지역 간의 경계선 및 그 주변 지역을 가리킨다. 유사한 용어인 “주변부”는 중심에 의해 규정된, 중심이 아닌 구획을 가리킨다(신형기, 2009). 변두리 공간은 전통과 현대,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공간의 또 다른 얼굴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서울의 외양적 성공과 팽창 속에 가려진 또 하나의 페르소나를 표상한다. 현대화된 중심부의 한 가운데 도시로부터 추방되거나 거부당한 서민들의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변두리로서 서울의 ‘주변’은 구로, 청계천, 가리봉동, 해방촌 등이 포진되어있다. 변두리의 개념은 지리적 위치와 더불어 중심에서 소외된 삶의 주변성도 내포한다. 변두리 지역에 해당하는 구로동, 가리봉동, 청계천 등은 한국 산업의 동력이 된 공간이면서 체제에 저항하고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는 장으로 노동과 산업의 역사와 괘를 같이 한다. 1980-90년대 구로동은 구로공단이라 불리는 구로수출산업단지가 있던 곳이어서 공장지대를 연상시킨다.

구로동은 옛날 마을에 노인 아홉 명이 오랫동안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구로동은 구로구의 중심이 되는 지역으로 구로1동~구로5동 등 다섯 개 행정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금천구 독산동, 영등포구 문래동, 관악구 신림동, 서쪽으로 고척동, 남쪽으로 가리봉동, 광명시, 북쪽으로 신도림동 및 영등포구 문래동과 이웃하고 있다. 일찍부터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여 구로구의 다른 지역에 비해 이주민이 많다. 구로의 옛 지명은 원주민의 이주와 공단을 중심으로 한 급격한 신도시 형성으로 지금은 별로 남아 있지 않으며, 공단 건설 이전의 한적한 전원 풍경도 찾아보기 힘들다.

구로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는 박종원의 <구로아리랑>, 김홍준의 <장미빛 인생>, 장산곶매의 <파업전야>를 들 수 있다. 변두리 지역과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꼬방동네 사람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풍경>, <피에타>, <위로공단>, <상계동 올림픽>이 있다. 이들 영화는 하위계층의 노동, 개인 혹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재현되고 있다. 영화는 공장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노동조건, 학생 출신 노동운동가의 위장취업, 노조 결성, 사업주의 반발과 해고, 구사대 등장과 같은 당시 노동현장의 참 모습과 서민들의 삶의 파편, 놀이 문화, 장소의 기표들을 담고 있다. 구로를 배경으로 한 변두리 영화는 공장 노동 장면과 노사 간의 투쟁 장면 등이 빈번하게 등장하여 장르적 관습으로 주목된다. 도상으로는 노동자들의 작업복과 사용자의 양복과 기름진 표정이 떠오른다.

배창호의 <꼬방동네 사람들>과 이장호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은 도시 변두리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하여 살아가는 이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세 주인공은 모두 시골에서 상경하여 도시의 변두리에서 목욕탕과 중국집 등에서 노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시골에서 상경하여 노동자로 편입된 세 남성이 거주하는 공간은 도시 개발이 진행 중인 도시의 변두리이다. 이곳은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도시경관이 현저하게 변하는 변화의 현장이다. 서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공간인 중국집과 이발소와 목욕탕은 시골에서 상경한 이들의 노동의 공간으로 영화는 도시 주변인들의 생활을 프레임에 채워간다. 이곳은 늘 가난의 얼굴을 보여주며 하층 계급의 생활이 후경에 배치된다. 변두리 재개발 장소는 도시 개발이 진행 중인 공사의 공간이며 동시에 남성 노동자의 땀과 여성 노동자의 몸과 웃음이 상품화되는 곳이다. 도시 변두리는 이장호의 <어둠의 자식들>과 배창호의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이자 생활공간이다. 사창가가 표상하는 육체의 상품화와 꼬방 동네라는 지명이 보여주는 하층민의 집합소가 변두리 주거 공간이며 그들의 발길이 닿는 비좁은 골목길이다. 길이 구불구불하는 공간에 걸맞게 등장하는 인물의 삶도 굴곡이 많고 사연이 많으며 도시 빈민의 맨얼굴이 프레임에 채워진다(장우진, 2016). <구로 아리랑>의 도시공간은 1980년대 구로공단의 사거리에 있는 ‘아세아 패션’ 이라는 봉제공장이다. 공장에 다니는 미싱사 여공들의 고된 모습과 그들의 자취방, 남자 노동자들의 곱창 집 등은 노동자들의 고되고 험한 삶과 사랑, 노동 운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서로를 위로하거나 즐거워하는 구로의 놀이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구로공단에 근무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은 근처의 건물에 모여 살고 있다. 3층 건물에는 작은 방과 공용 화장실, 부엌으로 구성된 40여 가구가 살고 있다.

근현대사에서 청계천은 격동의 땅이다. 1969년에는 주택 150채가 소실되는 숭인동 판자촌 화재사건이 있었다. 청계천 주변에는 시장을 중심으로 한 의류공장이 늘어서 70년대 상공업 시대의 주축이 되는 지역이었다. 1987년에는 청계천이 광장의 역할을 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청계천 인근 건물에서 대통령 선거유세를 하기도 했고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1960년대 발전을 상징하던 청계천 공간이 1980년대 들어 자본주의 양식의 변화와 그 흐름을 같이하면서 ‘도심 부적격 시설’이 밀집한 공간으로 지적되는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박광수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청계천 노동자들과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서사를 다룬다. 청계천은 노동의 공간이며 한국 산업화 시대의 대표적인 공간으로 표상된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청계천은 서울에 상경하여 우산을 파는 행상을 하던 전태일이 청계천의 재봉공장에 입사하여 공장의 열악한 근무조건과 노동 착취에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저항의 공간으로 수렴된다. 김기덕의 <피에타>에서 청계천 공구 상가는 21세기 서울 한복판에 위치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며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현대에 둘러싸인 과거 같은 곳이다. 새로 지어진 고층 빌딩들이 청계천을 빙 둘러싸고 있고, 자신이 먹고 자고 숨 쉬었던 공간에서 자신의 손때가 묻은 기계로 자살을 하거나 자해를 하는 노동자의 모습은 자본주의의 폐단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단절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피에타>에서 청계천은 미선과 강도처럼 고립된 이들의 거처이다. 자신의 생활공간인 집에서 강도의 유일한 인간적인 환풍구가 되는 것은 어항이다. 미선은 돈으로 인해 자식을 잃었고 자식에 대한 복수를 시도한다. 미선의 깊은 절망을 표상하는 배경은 청계천 뒷골목에 산적해있는 금속성의 물건들이며 쓰레기 더미이다.

구로공단 주변의 변두리 주거공간은 사회적 하층민들의 일상이 삶의 태도와 가치관 형성에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관습적 장면이 연출되며 노동자의 작업복과 산발한 머리는 인물의 도상으로 부각된다. 변두리 도시 영화의 도상은 유행과 동떨어진 허름한 의상들이며 어둡고 탁한 톤의 색상, 그리고 철 지난 여러 아이템을 겹쳐 입는 코디네이션으로 묘사된다. 부스스한 헤어스타일과 화장을 하지 않거나 과장된 모습, 눈썹이 얼굴형과 어울리지 않는 메이크업 등의 바쁘고 고된 노동자의 이미지로 박스형의 헐렁한 실루엣 의상들이 대표적이다.

<장미빛 인생>의 가리봉동은 구로동보다 방값이 더 싸고 일용직 노동자들이 더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은 집의 소음과 일용직 노동자들, 가출 청소년들이 천원만 내면 하루 몸을 뉘일 수 있는 엄지 만화방이 있다. 이 영화에서 가리봉의 풍경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치 중 하나는 옥상과 비행기 소리이다. 빨래를 너는 옥탑과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리는 비행기 소음이 들리는 옥탑방은 가리봉동의 가리봉이다. 그 외에도 3류 성인 극장, 가전제품 가게, 전자오락실, 다방, 술집 등 유행과 무관한 풍경은 구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자들의 사는 모습, 여성을 대하는 가치관,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모습 등은 변두리 도시공간이 인간의 삶과 가치관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보여주는 공간미학이 적용된다.

변두리 공간은 개인의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전개되거나 영화 장치 상 장소의 기표나 아이콘으로 표상하기도 한다. 유현목의 <오발탄>에 철호의 가족이 살고 있는 해방촌은 피난민의 임시거처이다. 해방촌(용산2가동)은 8.15광복 및 6.25사변으로 월남한 주민들이 정착하여 조성된 동네이며, 일제의 조선식민통치와 6.25 전쟁의 폐해가 역사적 기억으로 각인된 장소다. <오발탄>과 <박서방>은 1950년대의 해방촌 달동네의 하꼬방, 판자집, 구공탄 재 등 극빈층의 실상을 묘사하고 있다. 변두리 영화의 공간은 달동네의 좁은 주거 공간과 인물의 삶만큼 길고 구불거리는 골목길이 자리하며 후경으로 도시 개발이 진행 중인 개발지역이다. 인물은 하층민이 지배적이며 서울에 유입된 피난민이거나 도시로 이주하는 시골출신의 노동자들이 주요 인물이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서울에서 노동을 하며 의복은 작업복이나 청바지를 입으며 공간은 공장의 노동 현장이거나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투쟁 현장이다. 변두리영화는 도시의 원심력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도시의 변화를 추동하는 구심적 힘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참고문헌>
신형기,<주변부 모더니즘과 분열적 위치의 기억」, 『로컬리티 인문학』, 제2권, 45-74쪽, 2009.
유수연,<고립된 장소의 서사적 기능에 대한 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14권 5호, 74-84쪽, 2014.
장우진,<1980년대 이장호 감독의 영화에 재현된 공간의 혼성성 –터전의 상실과 주체의 생존력」,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 문화공간 : 균열의 공간, 1980-1987, 2016년 한양대학교 현대 영화연구소 콜로키움, 2016.
이정하,<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월간말, 1995년도 12월호(통권 114호), 242-243쪽, 1995.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신혜란,<80년대 구로의 회색빛 삶과 장밋빛 희망>, 국토, 제3권, 76-8쪽, 1999.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index.asp
한국영상위원회, 로케이션 DB, https://www.filmkorea.or.kr/

작성자: 문관규(부산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