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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정치학
  분류 : 디지털도시성
  영어 : cyborg politics
  한자 :

도나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침팬지와 인공물도 정치를 한다면 우리라고 왜 정치를 못하겠는가?”라는 위트 있는 반문을 던졌다(해러웨이 2019).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의 책 『침팬지 폴리틱스(Chimpanzee Politics: Power and Sex Among Apes)』(1989)와 랭던 위너의 글 「인공물은 정치적인가?」를 염두에 두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다. 이 질문은 정치가 지금껏 그 행위능력이 부정되었던 주체들로까지 확장됨과 동시에, 전통적인 정치적 영역은 다분히 탈정치화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정치 양식을 재구성하려 던져 본 것이다. 인공물의 정치적 행위능력을 보여 주는 유명한 사례로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의 고가 도로를 들 수 있다(위너 2010:32-4).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가 로버트 모제스(Robert Moses)는 인종차별주의자로서 해수욕장에 유색인들이 오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해안가로 향하는 도로 위에 건설된 고가도로를, 그들이 주로 타고 다니는 높이 3미터 가량의 버스는 지나갈 수 없되 중상층 백인들이 이용하는 승용차는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 높이로 설계했다. 위너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 특정한 기술적 배치에 따라 구성된 고가도로라는 사물은 특정한 정치적 효과를 선취하고 있기에 그 자체로 정치성을 내포한다. 사용자의 의도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공물은 정치를 하는 반면 인간 주체의 행위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는 정치가 어떻게 사고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이미 모두 사이보그’라면 정치는 어떤 모습을 취하게 되는가? 사이보그를 광의에서 본성상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것들의 접합체, 그 중에서도 특히 정보과학을 매개로 만들어진 구성체라고 간주한다면, 기계적 신체와 정신적 실체로서 영혼의 이분법에 근거한 정치의 개념은 적실성을 잃을 수 있다. 가령 크리스 그레이(C. Gray)와 스티븐 멘터(S. Mentor)가 함께 쓴 글 「사이보그 정체(政體) ver 1.2」은, 근대 정치를 특징짓는 홉스의 정치철학 사유에서 유기체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처럼 상호 대립되는 이미지들이 근대 정치에서 담당하는 구성적 역할을 검토한 뒤, 다양한 존재자들(인간, 생태계, 컴퓨터, 대기 등)의 잡종화를 통해 구성되는 현대의 정치체는 근본적으로 사이보그적이며 “이항대립 없는 차이의 경험, [……] 서로 겹치는 다중적 주체성을 포용하고 탐사하는 것”이 현대의 정치적 실천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Gray and Mentor 1995:459).  

일반적으로, 신기술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는 많이 알려져 있다. 체외수정과 같은 생식보조기술(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ies, ARTs)은, 그 자체도 이미 임신 중절 사례처럼 말끔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을 이끌어 내는 유기체적 온전성(integrity)에 기초한 인격과 그 인격의 권리 및 의무라는 개념을 더욱 복잡한 것으로 비틀어 버린다. 대리모가 그런 경우의 하나다. 저소득층 여성 신체의 조직적 착취를 가능케 하는 서비스 영역의 등장을 목도하게 되는 현 시점에서는, 개별 인격 주체들 사이의 권리 충돌보다 한층 복잡한 문제로 판명되었지만 말이다. 보다 최근에는 인공 자공 기술이 포유류(양)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새로운 문제의 등장을 예고했다. 이 기술은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의 활동을 전가하는 진화사적 제약을 넘어 급진적인 성별 평등을 실현시킬 기술적 촉매제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정반대로 ‘여성적인’ 능력과 힘을 도구화하거나 해체시켜 여성이라는 성을 한층 더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될까? 이 맥락에서 사이보그 정치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해러웨이의 정식화에 따르면 사이보그 정치를 해 나가기 위한 핵심 질문 중 하나는 “누가 어떤 사이보그가 될 것인가?”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첫째는 고전적인 범주를 따라 현상을 검토하는 것이다. 사이보그 시민권의 필수 요소라고 부를 수 있을 컴퓨터와 스마트폰 같은 전자공학기기들은 여전히 고가의 상품이고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유엔의 전문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으로 세계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전체의 51.2%인 39억 명으로, 보급률이 빠르게 증가하고는 있지만, 절반 정도는 아직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곽노필 2019). 이 관점에서 보면 은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이버스페이스를 문자 그대로 활용하여 구성되는 사이보그 정치학은 2020년 현재에도 보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또, 그 반대편에는 아직 대중적 보급 단계에 도달하지 않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다.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은 이와 같은 문제를 가시화하는 입장의 하나다. 인간이 타고난 신체적 조건에 머물러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당대의 기술이 제공하는 신체 개조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선택하거나 장려하는 것이다. 이 경우, 정치경제적 계급에 따라 신체적 능력의 차이가 차별화된 방식으로 체현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은 사이보그 정치학의 등장을 근대 이후 세계로의 이행과 관련 속에서 생각하는 만큼, 정치 지형의 변화 또한 그 각도에서 점검한다. 우선 사이보그는 태생이 제국주의, 군사주의,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하며, 그와 같은 사회관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이보그라는 정치적 주체성을 포용한다는 것은, 순수성(innocence)에 기대어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하기를 그만 두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선언을 이해하려면 「선언」을 페미니즘 텍스트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 해러웨이는 이 맥락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래디컬 페미니즘이 중요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단결을 위해 보편적인 억압의 메커니즘을 제시하는 중,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이 제기한 문제, 가령 인종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답을 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본다. 즉, 보편적인 억압 경험과 그로부터 비롯된 정체성이라는 단결의 기반을 마련하는 대신, 부분적 연결과 결연(affinity)의 실천을 제안하는 것이 사이보그를 정치적 주체성의 대안으로 제안하는 목적의 하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글쓰기 양식 또한 중요한 실천 유형으로 거론된다. 보편적이고 투명한 남성주의적 언어의 세계, 남근로고스중심주의(phallogocentrism)의 해체를 가능케 해 주는 실천 장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다시 쓰기를 시도하는 메스티조(mestizo)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그러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소재를 주로 다루는 페미니즘 이론가 첼라 샌도벌(Chela Sandoval)은 인터넷과 같은 현대 기술이 등장하기 이전에 3백여 년 동안 아메리카 대륙에서 사이보그 정치학을 구성하는 ‘대립 의식(oppositional consciousness)’을 비롯해, 주요 실천 요소들이 이미 구성되어 있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Sandoval 1991).  

해러웨이가 사이보그 정치학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배경 조건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은 지배의 정보과학(informatics of domination)이라 부르는 새로운 통제 체제이다(해러웨이 2019:44-5). 정보기술과 사이버네틱스를 근간으로 한 이 체제를 이해하려면 유기체론적인 술어를 버려야 하고, 그 지배의 작동 방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관점에서 문제를 사고할 필요가 있다. 가령 성별 노동 분업에 기대어 가정/시장/공장이라는 공간으로 구획되었던 경제 체제는, 실리콘 밸리 뿐 아니라 한국과 같은 제3세계 도심의 전자제품 조립 공장으로, 노동자이며 동시에 여성 가장이기 일쑤인 유색인 여성들이 배치된 생산라인으로, 곧 ‘집적회로 속의 여성들’이 가동시키는 생산 및 재생산, 임금 체제에 의해 대체되었다. 도시공간은 기능적으로 특화된 대단위 구역보다는,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모듈들이 거주, 소비, 생산 활동을 담당하는 복합 단지로의 재구조화 과정을 거쳤다. 해러웨이는 지배의 정보과학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가장 취약한 생계 조건에 있는 이들이 네트워크로부터 소외되는 경우가 가장 빈번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어떻게 연결을 이뤄낼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네트워킹은 다국적 기업의 경영 전략일 뿐 아니라 대립 정치의 주요 실천 방식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곽노필, “인터넷 이용자, 전세계 인구 절반 넘었다.” 한겨례 인터넷판 2019년 1월 2일. http://www.hani.co.kr/arti/PRINT/876627.html

다나 해러웨이 지음, 민경숙 옮김,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 동문선, 2002.  

도나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 옮김, 「사이보그 선언」, 『해러웨이 선언문』, 책세상, pp.15-112, 2019.

랭던 위너 지음, 손화철 옮김, 「인공물은 정치적인가?」,『길을 묻는 테크놀로지: 첨단 기술 시대의 한계를 찾아서』, 도서출판 씨아이알, pp.27-57, 2010.

Gray, Chris H. and Mentor, Steven. “The Cyborg Body Politic Version 1.2,” in Gray, Christopher. H., Figueroa-Sarriera, Heidi J., and Steven Mentor (eds.), The Cyborg Handbook, New York: Routledge,  pp.453-467, 1995.

Sandoval, Chela. “U.S. Third World Feminism: The Theory and Method of the Oppositional Consciousness in the Postmodern World,” Genders 10:1-24, 1991. 

 

작성자: 황희선(서울대학교 인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