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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적 공간(마르티나 뢰브의)
  분류 : 공간사회학
  영어 : Relationaler Raum(Relational Space)
  한자 : 關係的 空間


마르티나 뢰브(Martina Löw)는 『공간사회학(Raumsoziologie)』에서 그 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않던 사회적 차원의 공간적 계기들, 가령 도시, 신체, 환경 등을 주제화하면서 공간 이해의 문제를 사회적인 것으로 새롭게 드러내고자 시도한다. 특히 뢰브는 ‘구조주의’ 사회 이론이 절대적, 물리학적 공간 규정을 반복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공간 이해를 ‘관계적인 것’으로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공간은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구조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 행위, 사물, 제도, 문화 등의 구체적 상호 작용으로부터 파악되어야 하는 관계적(relational)인 것이다.


관계적 공간의 개념과 이론적 자원들

‘관계적 공간’ 개념의 기원은 라이프니츠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적 공간론’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라이프니츠에게 공간은 물체에 앞서서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물체로부터 파생되는 일종의 ‘질서(Ordnung)’이다(라이프니츠, 2005:74, 134, 142; Löw, 2001:28). 라이프니츠와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 또한 공간은 물체들의 인식 이후에 비로소 나타난다고 보며, 그는 단적으로 공간을 “물체들의 위치 관계”로 규정한다(아인슈타인, 2006:94; Löw, 2001:31). 뢰브는 라이프니츠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적 공간 개념을 수용하면서, 고전 물리학의 ‘절대적’ 공간관과 단절하는 한편 더 나아가 공간 규정에 도입되는 ‘물체’ 개념의 물리주의적 틀까지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내용 없는 ‘물체 그 자체’라는 개념 하에서는 공간과 인간 행위 그리고 사회적 현실의 근본적인 공속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뢰브는 공간 규정에 있어서 물체의 의미를 ‘생명체’와 ‘사회적 재화’로 대체하고 이로부터 “생명체와 사회적 재화의 관계적 질서화(relationale Anordung)”라는 관계적 공간의 핵심 규정을 이끌어낸다(Löw, 2001:154).
한편으로 뢰브는 아인슈타인의 공간 논의에서 공간 담론의 학제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뢰브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에게 공간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적 구축물”이고, 그는 자신의 공간 개념을 단지 물리학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것으로 이해되도록 했다. 뢰브 또한 공간 이해의 문제가 학제적인 경계를 벗어나 “맥락화(kontextuell)”되어야 한다고 보며, 특히 공간담론이 자연과학에 의해 식민화된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Löw, 2001:22-3). 물론 물리학적 진보가 공간 그 자체를 드러내 줄 것이라는 믿음과 공간 논의에서 과학의 주도성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은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뢰브는 물리학적 공간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 대한 공간 규정을 ‘선택’하기 위한 참조점일 뿐 거기에 절대적으로 구속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상대적 공간론을 대표하는 두 논자의 논의를 참조하면서 뢰브는 공간 담론을 지배해 온 절대적 공간 개념에 ‘내용’적으로 반대하면서, 전통적인 공간 규정의 배후에 있던 담론 ‘형식’까지도 변형시키고자 한다. 이에 따라 뢰브의 관계적 공간론은 인간 행위, 재화, 제도, 문화를 모두 연계하는 독특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뢰브는 통상적으로 공간 이해에 도입되던 상대적/절대적 공간의 대립을 무화하고, 공간적 제요소의 관계들을 일련의 ‘과정(Prozess)’으로 포괄하고자 한다. 뢰브가 말하는 이 ‘과정’의 원리는 기든스의 ‘구조의 이중성(Duality of Structure)’ 이론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있다. 구조의 이중성 이론은 구조를 구조이면서 동시에 행위로 보는 관점의 분리를 의미하며, 그 핵심은 구조와 행위의 상호 의존과 내적 연관 과정을 밝힘으로써 둘 사이의 엄격한 분리를 무너뜨리는 데 있다. 뢰브는 구조의 이중성 원리의 핵심을 공간 형성 과정의 내부로 이식한다(기든스, 2006:66-74; Löw, 2008:32) 그에 따르면 인간 행위의 능동성 및 연관된 제요소들이 공간을 형성하며, 이렇게 형성된 공간은 다시 행위 구조의 재생산에 개입한다. 뢰브의 주장은 단순히 주체/객체, 행위/구조 사이의 순차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뢰브에게 공간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과 그 구조의 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동일한 사태의 두 측면이며 동시적인 것이다. 뢰브는 전자의 과정을 "공간화", 후자의 과정을 "종합화"라고 표현하는데, 이 두 요소는 “공간 구성(Die Konstitution von Raum)” 과정의 핵심을 이룬다.(Löw, 2001:152, 158-61).


관계적 공간의 요소들

① 공간화와 종합화 : 공간화는 주체 자신을 포함해 공간적 대상을 설립하고, 그 위치를 부여함으로써 공간을 형성해가는 것이며, 종합화는 형성된 공간이 통합된 인간의 공간 지각으로서 드러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적인 공간 구성 속에서 종합화와 공간화는 동시적이다. 가령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배치하고 전달하는 공간화가 ‘글로벌 씨티’라는 종합화를 이끌어내고, 또 반대로 뉴욕, 도쿄, 런던, 파리, 그리고 홍콩 같은 도시들을 글로벌 공간으로 종합화함으로써 금융업자들의 개별적인 공간화가 각인된다.

② 습관과 제도화 : 일상은 일련의 관습적 행위에 따라 형성된다. 뢰브는 사람들이 특별한 성찰 없이 일상적으로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일상적인 무의식적인 습관은 공간 구성의 중요한 요소이며, 담론적인 차원과 교류하는 과정을 거쳐 제도화를 이끌어낸다. 가령 다른 도시, 다른 이웃 마을을 돌아다녀보면 같은 공간 구조가 계속해서 나타나는데 슈퍼마켓을 예로 들면 상품, 사람들, 위치, 입구에 있는 출입제한 등이 서로 유사한 방식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즉 공간에서의 이러한 제도화는 일상적 관행에서 출발한다.

③ 공간적 구조 : 뢰브에 따르면 공간적 구조는 법적, 경제적, 정치적 구조들과 병치되며 전체 사회 구조가 이러한 각각의 구조들의 공동작용으로 형성된다고 본다. 뢰브는 ‘공사 구분’이라는 사회 구조를 한 사례로 든다. 공사 구분의 구조는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각각의 구조들 속에서 명시화된다. 한쪽에 무보수의 가사노동이 있다면 다른 쪽에 보수가 지급되는 노동이 있는 식으로 말이다. 공간적 구조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로 표현된다. 주택의 형태나 단속성 정도가 사적 공간 구조의 표현이라면 거실 공간은 공적 공간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즉 공간은 하나의 구조로서 전체 사회 구조의 일부로 포괄되는 동시에 전체 구조의 표현 형태이다.

④ 일탈과 변형 : 뢰브는 공간 구성의 변화가능성이 일탈적 행위와 습관의 변형을 통해 나타난다고 본다. 일탈적 행위는 “행위의 스펙트럼을 다양화하는 것”이며 변형은 “기존의 습관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Löw, 2001:185). 뢰브는 부르디외가 제시한 바 있는, 프랑스로 온 알제리 이민자들을 그 예로 든다. 이민자들은 알제리에서의 행위 습관을 지속할 수도 없고 프랑스식 주거방식에 그대로 따를 수도 없다. 온돌문화와 서구식 주택의 문화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입주한 프랑스의 주택은 그들이 쉽게 적응할 수 없고, 재정적으로 부담하기도 어려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공간에 수동적으로 얽매인 상태에 머물지 않으며, 자신들의 생활 조건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능동적인 욕망에 따라 일탈을 경험한다. 공간에 내재한 행위양식을 벗어남으로써 기존의 공간 구성에는 균열이 나타나며, 이는 새로운 공간 구성의 출발점이 된다.

⑤ 분위기와 신체 : 공간은 감정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뢰브는 이것을 ‘분위기’로 이해한다. 가령 조급한 마음을 갖고 상점에 들어섰다가 상점의 음악, 향기 등이 만들어내는 차분한 분위기에 빠질 수 있다. 뢰브는 분위기가 “공간적 질서 속에서 실현된 사회적 재화와 생명체의 외부 효과”(Löw, 2001:205)라고 본다. 그에 따르면 분위기의 내용 자체가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닌데, 뢰브는 ‘문화’, ‘계급’, ‘젠더’와 같이 지각하는 사람의 ‘신체’에 각인된 구조나 질서가 분위기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본다. 즉 신체는 공간 이해의 일상적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을 매개하는 중심이다.

뢰브의 관계적 공간 개념, 즉 ‘생명체 및 재화들의 질서관계’로서 공간은 공간 구성 과정에 나타나는 이러한 기초 요소들을 통해서 비로소 사회적 차원의 내용들을 갖추게 된다. 주목할 것은 전체 사회 구조를 공간에 ‘외재적인’ 구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으로 수렴하는 통합적 과정의 일부분으로 본다는 점, 그리고 일상적 습관과 무의식이 공간 구성에 개입하며 나아가 그것들이 공간 구조의 변화를 추동하는 요소로서 인정된다는 점이다(이현재, 2012:240-1). 즉 공간과 구조의 역동적 상호 작용과 공간 구성의 변화 가능성은 관계적 공간론의 가장 강한 두 가지 주장이다.


관계적 공간의 적용 : 도시의 내적 원리

뢰브는 관계적 공간의 원리를 도시 연구에 적용한다. 관계적 공간론에 따르면 각각의 공간은 해당 공간의 고유한 관계성들에 따라 그 정체성을 형성하며, 이는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우리는 한 도시가 나타내는 개성을 고유한 색깔로 표현할 수 있다. “뉴욕은 노란색, 런던은 빨간색, 파리는 파란색, 그리고 베를린은 초록색”이라는 식으로 말이다(Löw, 2008b:9). 즉 뢰브는 관계적 공간론의 연장선상에서 “도시의 고유한 내적 논리(Eigenlogiken der Städte)"가 있음을 주장한다(Löw, 2008b:65).

우선 뢰브는 영국 북부에 위치한 도시인 맨체스터와 쉐필드에 대한 연구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도시 내부에서 나타나는 일상적 관습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두 도시의 서로 다른 개성을 만들어냈다. 맨체스터가 변화에 적응해나가면서 도시의 경제 구조를 변화시키고 직업적 이동을 활발하게 만든 반면, 쉐필드는 과거의 산업적 영광을 회고적으로 돌아보는 데 급급했고 그것이 두 도시의 현재를 만들었다(Löw, 2008b:57-8; 2009:2-3).

뢰브는 두 도시의 상이한 정체성을 각 도시의 사회적 관행과 연관지으면서 도시의 고유한 내적 논리가 지역적으로 관행화된 일상의 반복 속에 내재해있다고 주장한다. 즉 하나의 도시도시민의 습관적 행위, 신체, 문화, 경제, 시장 전략 등의 복합물로 이해함으로써 그 고유한 논리와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뢰브는 각 도시의 고유한 정체성이 해당 도시의 표상방식을 형성하고, 이로부터 도시의 내적 논리가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나간다고 주장한다. 뢰브는 베를린과 뮌헨을 그 사례로 든다. 그에 따르면 가령 국제적인 도시이자 예술도시로서 베를린의 이미지는 남성취향의,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표상방식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다시 현재의 베를린을 재생산하는 자원으로 동원된다. 또한 뮌헨은 시골 풍경이나 천진한 소년의 이미지로 표상됨으로써 독일적 전통과 고유의 지역색을 간직한 도시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게끔 한다(2008b:193, 195, 216, 242).

요컨대 뢰브는 모든 도시가 고유한 내적 논리에 따른 생산/재생산의 과정 속에 있다고 본다. 도시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공간이 어떤 절대적이고 지배적인 원리나 구조에 단순히 종속될 수 없다는 관계적 공간론의 기본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즉 뢰브의 논의에서 관계적 공간은 사회 공간의 실제적 분석을 위한 가능 조건이다.


<참고문헌>
Einstein, Albert. “Raum, Äther und Feld in der Physik” in Jörg Dünne und Stelphan Günzel(Hg.). Raumtheorie. Suhrkamp. 2006.
Löw, Martina. Raumsoziologie. Suhrkamp. 2001.
                   . “The Constitution of Space - The Structuration of Space Through the Simultaneity of Effect and Percertion”. Eurupean Journal of Social Theory 11. 2008a. 
                   . Soziologie der Städte. Suhrkamp. 2008b. 
                   . “Intrinsic Logic of Cites”. 7th International Space Syntax Symposium. 2009.
기든스, 앤서니. 『사회구성론』. 황명주, 정희태, 권진현 옮김. 간디서원. 2006.
라이프니츠, G. W. 『라이프니츠와 클라크의 편지』. 배선복 옮김. 철학과 현실사. 2005.
이현재. 「다양한 공간 개념과 공간 읽기의 가능성 –절대적, 상대적, 관계적 공가 개념을 중심으로」. 『시대와 철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3권 4호. 2012.

작성자 : 신승원(서울시립대 철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