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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
  분류 : 중국도시문화
  영어 : Community
  한자 : 社區

사회주의 시기에 중국 도시 지역에서의 경제생활과 사회복지 및 정치적 통제는 모두 ‘단위체제’(單位體制) 안에서 이루어졌다. 즉 개혁 초기인 1980년대까지 도시지역의 주민들은 단위를 벗어나서는 생존이 힘들 정도로 단위체제가 주민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국유기업과는 질적으로 다른 형태의 사영기업이 대량으로 생겨났다. 이와 함께 시장(市場)이 재화 분배와 가격 결정을 주도하면서, 도시주민들은 화폐를 사용해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더 이상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단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이다(박철현, 2015: 125-126). 또한 시장경제 체제로의 개혁이 가속화되면서 국유기업의 구조조정과 공유제 주택제도의 폐지 및 주택의 상품화로 단위체제가 실질적으로 붕괴되었고, 도시 주민들의 단위에 대한 소속감도 약화되었다. 그리고 호적제도의 이완으로 농민공들이 대거 도시로 유입되면서 중국정부는 도시의 행정체계를 새롭게 재편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도시지역 기층사회 관리체제를 기존의 단위체제에서 ‘사구’(社區)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기존의 단위체제가 소속된 직장에 기초한 관리체제였다면, ‘사구’는 주민의 거주지역에 기초한 기층사회 관리체제이다. 2000년에 발표된 민정부의 23호 문건인 ‘도시 사구건설을 전국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관한 민정부의 의견’(民政府關於在全國推進城市社區建設的意見)은 “사구란 일정 지역 범위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조성하는 사회생활 공동체이다. 현재 사구의 범위는 통상 사구체제 개혁 후 규모조정을 단행한 주민위원회 관할구역을 포함한다”고 정의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사구는 주민들이 특정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구성한 공동체가 아니라, 새롭게 재편된 행정구역을 통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주민과 정부의 매개자이자 정부 지령의 수행자로서 과거 주민위원회가 맡았던 임무는 사구업무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즉 사구의 주요 업무는 퇴직자 관리, 재취업 훈련, 최저생활보장제도 운용 등 단위체제의 붕괴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정부의 재조직화 과정으로 확장되었다(조문영, 2011: 445). 이처럼 중국 정부는 단위를 대체하는 정책수행 도구로서 사구를 새롭게 재편함으로써 도시 거주민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한편, 지방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통로로 활용함으로서 사회 기층관리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金仁, 2014: 135).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가 사구조직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중국 사회의 기층조직 개혁이 본격화되었다. 즉 1993년에 민정부 등 14개 부처는 ‘사구 서비스 발전 가속화에 관한 의견’(關於加速發展社區服務業的意見)을 발표하여 사구 서비스는 새로운 방식으로 정부의 위탁을 받은 가도판사처(街道辦事處)와 주민위원회(居民委員會)가 주민들의 수요를 만족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중국 정부는 본격적으로 ‘사구건설실험구’(社區建設實驗區)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 민정부는 전국 각지에 26개의 사구건설실험구를 지정했으며 각 성과 시, 자치구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그리고 2002년 9월에 ‘전국도시사구 건설회의’(全國城市建設會議)에서는 27개 도시를 전국사구건설시범시(全國社區建設示範市)로, 148개 도시를 전국사구건설시범구(全國社區建設示範區)로 지정했다. 대표적인 사구건설 사례로는 사구 경계를 업무 중심으로 재편하여 업무 효율을 높인 ‘선양 모델’(深陽模式), 사구 내부관계에 적합한 형식으로 정부의 기능을 전환한 ‘장한 모델’(江漢模式), 주민위원회의 독립 권한과 기능을 강조하여 사구 서비스를 정돈하고 네트워크 기능을 향상시킨 ‘난징·항저우 모델’(南京·杭州模式), 그리고 2급 정부(市·區縣政府)와 3급 관리(市·區縣과 街道 혹은 鄕鎭)로 유명한 ‘상하이 모델’(上海模式) 등이 있다(유정원, 2011: 116-118). 이처럼 지역적 특성과 사회주의적 유산의 특색에 따라 각 지방에서 추진되는 사구건설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구가 영어의 커뮤니티(community)로 번역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사구를 기반으로 한 기층관리체제는 기본적으로 ‘자치’가 강조되었으며, 이에 따라 사구 내부에도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조직과 체계가 수립되었다. 사구 내부조직은 크게 ‘가도판사처’(街道辦事處), ‘주민위원회’(居民委員會), ‘업주위원회’(業主委員會), ‘사구 중개조직’(仲介組織), ‘주민대표대회’ 등으로 구성된다. 가도판사처는 구정부(區政府) 산하기관으로 행정부문의 최말단 조직이다. 여기에 공산당 조직이 설치되어 있는데, 공산당 조직은 가도판사처의 각종 업무와 조직을 지휘한다. 그리고 공산당 서기가 가도판사처의 주임을 겸임하는 경우가 많다. 주민위원회는 원칙적으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자치조직이다. 그런데 단위체제가 사구로 대체되자, 주민들에게 각종 생활상의 서비스와 복지를 제공하고, 주민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주체가 되었다. 주민위원회 내부에는 가도판사처 공산당 조직의 지부(支部)가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주민위원회는 명목상 자치조직이지만, 주민에 의해 선출되는 주임이 공산당 지부 서기와 같은 인물인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주임과 직원들의 급여 및 사구 운영에 필요한 재정의 상당부분을 시정부와 구정부가 가도판사처를 통해서 지급하기 때문에, 주민위원회가 인사와 재정 모두에 있어서 국가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기는 힘들다. 업주위원회는 1990년대 말에 최종로 등장한 조직인데, 업주(業主)는 부동산 소유자를 지칭한다. 업주위원회가 사유 재산권을 기초로 조직된 이익단체라는 점에서, 근대 서방정치사의 부르주아 시민계급처럼, 국가에 대항해 자신의 권리를 획득하고 민주주의를 가져올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공산당 조직은 가도판사처와 주민위원회를 통해 업주위원회의 형성 과정에 개입하고, 이들에 대한 행정관리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업주위원회의 권익보호 운동을 마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의 맹아인 것처럼 보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구 중개조직도 1990년대 중후반 최초로 등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사구 서비스센터 및 상점, 그리고 위생과 취미활동 조직이다. 이들은 공산당 조직이나 주민위원회와 주민들 사이에 개입해 주민들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사구 내의 주민대표들로 구성되는 주민대표대회는 주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기구로서 원칙상 사구 최고의 권력기구다. 주민위원회의 업무를 감독하고, 주민의 이익에 관계되는 중요 사항의 경우 주민대표대회의 토론을 거쳐 처리할 것을 주민위원회에 요구할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공산당 조직은 주민대표대회를 지도하며, 주민들 중 당원들을 동원해 주민대표대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주민대표대회는 주민 전체의 의사를 반영해 사구의 각종 사항을 의결하는 기구라기보다는 공산당의 정책을 홍보하고 추인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박철현, 2015: 126-129).

한편 사구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 기층관리 체제의 개혁은 중국 사회 전체의 전반적인 변화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으며, ‘사회관리’(社會管理, social management)에서 ‘사회치리’(社會治理, social governance)로의 전환이라는 보다 큰 틀의 사회통치 체계의 변화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정규식, 2017). 중국에서 ‘사회관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8년의 <국무원기구 개혁 방안에 관한 결정>(關於國務院機構改革方案的決定)이라는 문건이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199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국유기업 조정 과정에서 대량으로 발생한 실직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이 사회적인 위기감으로 확대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사회관리’의 개념과 체계 및 필요성이 보다 분명하게 제시된 것은 2004년 중국 공산당 제16기 4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회건설과 관리의 강화 및 ‘사회관리 체제의 혁신, 당위원회의 지도, 정부의 책임, 사회의 협조, 공중참여’의 완전한 수립을 목표로 하는 사회관리 체계에 대한 구도가 제시되면서부터이다(백승욱, 장영석, 조문영, 김판수, 2015). 그러나 위로부터의 통제적 성격이 강한 ‘사회관리’ 체계로는 사회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이 어려우며, 조화로운 사회건설을 추진하는 데에도 방해가 되고, 심지어 모순을 더욱 격화시키고 사회 불안정의 근원을 은폐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제기되었다. 특히 사회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의 권리의식이 제고되고, 인터넷을 통한 권리수호 행동이 계속 증가하는 현실에서 기존의 강제적인 사회통제 방식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었으며, 이에 따라 ‘사회관리’에서 ‘사회치리’로의 전환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사회관리’에서 ‘사회치리’로의 전환이 갖는 중요한 함의는 다원적인 주체와 민주적인 참여를 중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적 동원과 행정적 관리에 단순하게 의존했던 전통적인 모델에서 탈피해 앞으로는 정부 주도하에 다원적인 주체가 참여하는 사회치리 체제를 수립할 것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당 조직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조직, 공민 등이 사회치리의 조직자와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즉 ‘정부(단위)-사회’라는 일원적 구조 모델을 타파하고, ‘정부(단위)-사회(사구)-사회인’이라는 다원적 구조 모델을 형성하여 다원적 주체가 사회치리에 참여할 것이 강조된 것이다(張娜, 2016).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중국의 사회관리 체제는 단위체제 시기에서는 국가가 사회와 시장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으나, 개혁개방 시기에 들어와 정부와 기업 및 사회가 분리되는 전환 과정에 적응하여 변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정규식, 2017). 그리고 이러한 ‘정부(단위)-사회(사구)-사회인’으로 연결되는 구조 변화에 따라 정부와 ‘사회인’으로서의 개인을 연결할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 ‘사구’(社區, community)의 건설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인, 「중국 도시 공간 재구성과 지배구조 변화: 단위와 사구 변화를 중심으로」, 『중소연구』 제38권 제1호, 2014.
박철현, 「‘사회 거버넌스’의 조건: ‘단위’를 대체하는 ‘사구’」, 『성균차이나브리프』, Vol.3. No. 4, 2015
백승욱, 장영석, 조문영, 김판수, 「시진핑 시대 중국 사회건설과 사회관리」, 『현대중국연구』, 제17집 1호, 2015.
유정원, 「중국 기층사회의 변화와 특성: 사구를 중심으로」, 『중국지식네트워크』, Vol.1. No.-, 2011
정규식, 「중국 노동체제의 제도적 특성과 노동자 저항의 정치적 동학」,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7.
조문영, 「‘결함 있는’ 인민: 중국 동북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기층간부들의 ‘사구자치’가 갖는 딜레마」, 『현대중국연구』, 제13집 1호, 2011.
張娜, 「社會治理背景下遼寧省社會工作發展情況概述」, <시진핑 시대 중국 사회관리정책의 변화와 기층사회의 대응> 연구프로젝트, 중국 동북지역 조사보고서, 미출간, 2016.

작성자: 정규식(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연구원)